황희의 정신analysis(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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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4-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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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자신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왕위찬탈을 기도하거나 보복을 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심리상태다.
이 두 왕은 언제나 죄악감, 피해의식, 불안, 양가감정(ambivalence)등의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을 처리함에도 공명정대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황희의 이러한 행태는 자아동일성을 지키려 무한한 애를 썼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황희가 아무리 멸사봉공의 자세로 통찰력을 갖춘 선비라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오래 최고위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정신analysis학적 직관에 의하면 태종과 세종은 공히 집권 과정에서 무리수를 강행한 원죄의식이 계속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태종은 1,2차 왕자의 난을 겪은 뒤 왕위에 올랐으며, 세종은 자신의 형인 양녕대군이 폐세자 되는 과정을 보고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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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의 정신analysis(분석)





영의정 자리를 떠나게 해달라고 반복해서 왕에게 간청했으나 왕은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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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재주와 적응력이 떨어져 난청, 건망증, 현기증이 생겼다고 하여 영의정 자리를 떠나게 해달라고 반복해서 왕에게 간청했으나 왕은 번... , 황희의 정신분석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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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재주와 適應력이 떨어져 난청, 건망증, 현기증이 생겼다고 하여
영의정 자리를 떠나게 해달라고 반복해서 왕에게 간청했으나 왕은 번번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희는 확고한 신념(왕권주의 이데올로기)을 가졌고, 사적인 야망이 없는 적임자였던 셈이다. 타고난 풍채도 우뚝 크고 총명하기 그지 없었다.
따라서 이들 두 왕은 자신에게 절대로 복수를 하지 않고 유교주의적 원칙을 청저히 수행할 인물을 선호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감투가 자신이 감당할 능력보다 크게 보이면 언제나 물러날 것을 상부에 요청하는 등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결국 87세의 나이로 영의정을 물러났는데 `문종실록`에는 `황희는 천성이 너그럽고 부드럽고 신중하며 재상으로서의 식견과 도량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황희는 왕조 초기의 각종 위기현상에 흔드리지 않고 대처함으로써 두 왕의 심리상태를 안정…(省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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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재주와 적응력이 떨어져 난청, 건망증, 현기증이 생겼다고 하여
다. 이것은 원래 겸손했던 황희의 성격적 특징과도 관계가 있지만 정신analysis정치학에서 보면
황희는 언제나 자신의 역할, 능력, 잠재력, 분수 등을 민감하게 측정(測定) 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