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 조선 세종 조의 걸작 ‘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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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03-1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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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대가들의 작품 중에서 안견이 제작한 몽유도원도는 오랜 세월의 흐름을 버티고 재난을 피하여 유일하게 살아남은 단 한 점의 진작(眞作)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장기간의 歷史를 통해 빈발했던 전쟁, 천재지변, 화재 등으로 회화는 피해를 가장 혹심하게 받았다.
선사시대의 선각화(線刻畵)를 제외하고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구사한 전형적인 우리나라 회화의 歷史는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16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중요文化財 일본 천이대학 중앙도서관 소장
안견 조선, 1447年 비단채색 38.6×106.2cm
[미술학] 조선 세종 조의 걸작 ‘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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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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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조의 걸작 ‘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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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은 세종조(世宗朝)가 낳은 조선왕조 최대의 거장으로 우리나라 회화사상 신라의 솔거(率居), 고려의 이녕(李寧)과 함께 삼대가(三大家)라고 불릴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현재 남아있는 작품들을 통하여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회화사의 모든 양상과 최고의 수준이 아니라 그것의 대체적인 경향과 대강의 발달 정도에 불과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몽유도원도의 소중함을 쉽게 가늠할 만하다. 이러한 歷史적 상황을 감안할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자체가 지닌 절대적인 가치 때문에 더욱 빛나고 더없이 귀중하게 여겨지는 작품이 바로 안견의 몽유도원도이다. 이 때문에 창출되었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남아 전하게 되었으며 그나마 명작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작품들이 살아남는 행운을 얻게 된 경우가 많다. 이 긴 회화의 歷史 속에서 뛰어난 화가들이 배출되었고 수다한 가작(佳作)들이 창출되었다.